동서양을 가르는 경계에 대하여 1 - 숲의 종교와 사막의 종교

동서양을 가르는 경계에 대하여 1 - 숲의 종교와 사막의 종교

Summary 숲의 종교는 다양성과 상호관계를 강조하며, 사막의 종교는 엄격한 규칙과 절대적인 믿음을 중시한다. 동양의 숲의 종교는 자연의 순환과 조화, 윤회 사상을 통해 삶과 죽음의 연속성을 이해하며, 서양의 사막의 종교는 생존을 위한 강력한 공동체적 결속과 유일신 사상을 강조한다. 이러한 환경적 차이는 각 문화의 철학과 가치관에 깊은 영향을 미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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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양과 동양을 가르는 경계는 어디서 오는가? 

그 기준은 거슬러올라가 자연이라는 인류가 절대로 초월할 수 없는 환경에서 기인한다.

서론

학부시절 1학년 때였나,,, 책이라곤 양판소와 삼국지, 신화책 말고는 제대로 읽어본 적 없던 내게 철학수업은 정말 센세이션 그 자체였다.

정답이 존재하지 않고 그저 내 생각을 말하면 되는 수업, 그리고 평소에 정리되지 않은 나의 생각들을 과거의 누군가들이 명쾌하게 정리해둔 철학이라는 수업은 내게 새로운 세계를 열어주었다.

아래 내용은 기억이 가물가물하지만, 아마 1학년때 인간학 수업에서 잠시 언급했던 숲의 종교와 사막의 종교에 대한 이야기다. 당시에 인상 깊게 들었고, 살아가면서 동양과 서양을 이해하는 과정에서 이 인사이트가 근간이 되어 많은 것들을 이해하게 된 것 같다. 이제 제대로 이해했는지 스스로 다시 정리해볼 겸, ‘동서양을 가르는 경계에 대하여’라는 시리즈로 머릿속에 혼재하던 생각들을 한번 정리해보려 한다.

CS를 전공한 분들이라면 공감하겠지만, 생각보다 CS에는 객체라던가.. 주체라던가.. 상당 부분 있어서 꽤나 철학적인 심오한 요소들이 존재한다. 그래서 가능하다면 그냥 인문학으로 끝나지 않고, 그래서 개발자 혹은 엔지니어로서, 우리는 이를 어떻게 우리의 라이프에 녹아들게 만들 수 있을까? 를… 함께 고민해보고자한다.

아마 내가 겉핥기식으로 이것저것 알고 있고, 합당한 근거 없이 조금씩 알고 있는 내용들을 어떻게든 이어보려는 글이 될 것 같다. 그래서 그냥 재미있는 인사이트 정도로만 읽어주면 감사하겠다…

자, 그러면 동서양을 가르는 첫번째 경계, 숲의 종교와 사막의 종교에 대하여 한번 알아보자…!

Forest vs Desert ???

숲의 종교는 다양성상호관계를 강조하는 반면, 사막 종교는 엄격한 규칙절대적인 믿음을 강조한다…

🎥 동영상 보기

한글로 숲의종교와 사막의 종교를 검색하면 도통 만족할만한 내용이 나오지 않는다… 종교를 믿는 사람들이 과거에 적은 가독성 떨어지는 글이나, 너무나도 종교적으로만 해석한 글들로 가득하다…

그러던 도중, 유튜브에는 이 정체모를 아저씨가 꽤나 숲의 종교와 사막의 종교에 관하여 쉽게 정리해둔 영상이 있어 남겨둔다.

영상의 내용을 정리해보자면, “숲” 종교와 “사막” 종교의 차이점을 분석한다.

  • **숲의 종교 특징:**대표적으로 힌두교, 불교 등이 있습니다 다양한 생각과 믿음을 받아들입니다 모든 것이 서로 연결되어 있다고 봅니다 평화롭고 포용적인 성격을 가집니다 새로운 생각과 변화를 잘 받아들입니다
  • **사막의 종교 특징:**대표적으로 기독교, 이슬람교, 유대교가 있습니다 엄격한 규칙과 하나의 절대적 신을 중요시합니다 옳고 그름을 명확하게 구분합니다 다른 믿음에 대해 배타적인 경향이 있습니다 변화를 받아들이기 어려운 편입니다 즉, 숲의 종교는 다양성과 조화를 추구하고, 사막의 종교는 절대적 진리와 규칙을 중시한다. 이러한 차이는 각 종교가 생겨난 자연환경으로부터 기인한다.

그러면 이에대해 이야기와 함께 조금 더 알아볼까?

숲의 종교 - 숲과 윤회: 자연이 빚어낸 동양의 순환 철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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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양에서 숲은 단지 나무의 집합이 아닌, 삶과 우주의 순환을 가르쳐주는 철학의 공간이었다. 

사계절의 명확한 변화, 계절마다 다른 음식을 먹는 식문화, 조상숭배와 윤회 사상은 모두 자연의 순환과 연결된다. 

숲을 통해 사람들은 삶과 죽음이 끝없이 이어지며 모든 존재가 결국 하나로 연결되어 있음을 깨달았다. 

이것이 동양의 '숲의 종교'가 가진 깊은 의미이다.

» 숲이 가지는 그 순환의 의미

»» 숲, 동양이 느끼던 우주.

그렇게 바라보면 숲이 왜 성스러운 곳으로 여겨졌는지 조금은 이해할 수 있을 것 같다.

우리가 동양에서 자라면서 자연스럽게 몸으로 익힌 사계절의 순환은 결국 우주가 돌아가는 원리와도 닮아 있다.

서양에서는 신이 세계를 한 번에 창조하고, 시간은 앞으로만 나아가는 직선이라 믿었지만, 동양에서는 오히려 시간이 끝없이 원을 그리며 되풀이된다고 생각했다. 삶은 끝이 아니라 또 다른 시작이었고, 죽음도 결국 새로운 생명으로 다시 돌아오는 과정일 뿐이었다.

»» 비약일까? 식탁에도 숲의 철학이 담겨있다.

그런 생각을 하고 있으면 문득 음식이 떠오른다.

할머니께서는 지금도 철마다 나는 각종 나물들과 채소들을 잔뜩 선보인다. 봄에는 봄나물을, 여름에는 오이와 참외 그리고 수박을, 가을이면 밤이 들어간 송편을, 겨울이면 생굴과 곁들여 먹는 강릉식 김치를 먹곤 했다. 계절마다 제철 음식을 먹으며 자연의 흐름을 따르는 것은, 결국 인간이 자연 속 작은 부분이라는 사실을 매일 일깨워주는 일이 아니었을까? 우리의 식탁 위에도 숲의 철학이 있었던 셈이다.

그런데 이런 생각을 하다 보니 동양의 윤회 사상이 자연스럽게 이해된다.

윤회라는 개념이 인도에서 불교를 통해 들어왔지만, 사실 우리는 이미 그것을 알고 있었던 게 아닐까? 매년 반복되는 농사의 리듬 속에서, 끊임없이 이어지는 조상과 후손의 관계 속에서, 죽은 조상의 영혼이 다시 돌아온다고 믿으며 제사를 올리는 우리 문화는 결국 자연의 순환을 그대로 닮아 있다. 조상과 후손이 계속 이어지는 것은 결국 삶의 순환을 의미하는 게 아닐까?

숲과 산을 바라보면 동양의 옛사람들은 삶과 죽음을 넘어서 자연과 우주의 순환을 느꼈다. 그래서 나무 하나, 바위 하나에 신령이 있다고 믿었던 것일 테고, 그 신성한 숲 안에서 인간의 삶이 자연과 조화를 이루기를 바랐던 것이 아닐까 싶다.

이렇게 바라보면, 숲은 단지 나무가 많은 장소가 아니다. 그것은 삶과 죽음, 인간과 자연, 나와 타인이 모두 연결된 순환의 원을 깨닫게 하는 거대한 철학의 장이다. 그래서 숲 속에 들어가면 우리는 자신도 모르게 경건한 마음이 드는지도 모르겠다.

어쩌면 숲의 고요함은, 우리에게 “모든 것은 결국 돌아온다"는 우주의 가장 큰 비밀을 들려주는 속삭임이 아닐까?

» 숲의 종교로 이해하는 동양의 문화

지금까지 이야기한 내용을 다시 살펴보니 핵심이 조금 더 명확해졌다.

동양에서 뚜렷한 사계절은 생명과 죽음이 끊임없이 반복되는 과정을 그대로 보여주는 가장 강력한 교과서였을 것이다. 매년 나무가 잎을 틔우고, 열매를 맺고, 다시 낙엽을 떨어뜨리며 생을 마감하는 모습을 보며, 사람들은 삶과 죽음이 특별한 것이 아니라 자연스러운 현상이라는 것을 이해했을 것이다.

»» 동양인들에게 삶과 죽음은 자연의 섭리였다.

이렇게 자연의 순환을 일상적으로 느끼다 보니, 동양인들에게는 윤회라는 사상이 쉽게 받아들여졌을 것이다. 죽음은 삶의 끝이 아니라, 다시 다른 형태로 돌아오는 과정일 뿐이라는 생각이 낯설지 않았던 것이다. 윤회는 인도에서 전래된 불교를 통해 더 정교하게 발전되었지만, 본질적으로는 이미 동양 사람들이 가지고 있던 세계관과 잘 맞았다.

여기서 더 중요한 건, 이런 자연 순환의 철학이 동양인의 삶과 태도에 어떤 영향을 주었는지다.

자연을 극복하거나 정복해야 하는 대상으로 보았던 서양과는 달리, 동양에서는 자연과 인간의 관계를 ‘조화’라는 관점에서 바라보았다. 인간은 자연의 한 부분이며, 자연을 극복하려 하기보다는 자연과 어우러져 살아가는 것이 더욱 자연스러운 태도였다. 이는 자연에서 얻는 곡식과 과일, 채소가 모두 농경이라는 집단적이고 협력적인 노동을 통해서만 얻어질 수 있다는 현실과도 맞물려 있다. 동양 사람들은 자연에서 필요한 것을 얻기 위해 서로 협력하며 공동체적이고 조화로운 삶의 방식을 발전시켰다.

»» 벽과 기둥, 자연을 대하는 동서양의 차이.

그리고 이 모든 관념의 중심에 ‘숲’이 있었다.

숲은 동양인들에게 그 자체로 생명과 죽음, 순환과 재생의 상징이었다. 울창한 숲 속에서 사람들은 신을 발견했고, 나무와 돌 하나에도 신령이 깃들어 있다고 믿었다. 이는 곧 자연과 인간의 일체감을 느끼게 해주는 원천이었다. 숲의 종교라는 것은 결국 자연과 인간이 끊임없이 순환하고 연결된다는 깨달음에서 비롯된 것이다.

»» 자연을 받아들인 동양인들의 삶의 태도

자연과 조화를 중시하는 동양인들에게, 숲은 극복해야 할 공간이 아니라 신성한 공간이었다. 숲과 인간의 관계는 대립이 아닌 공존이었다. 이러한 생각이 바탕이 되어 사람들은 자연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고, 자연 속에서 얻을 수 있는 것들에 감사하며 공동체적 삶을 추구했다.

결국 숲의 종교가 우리에게 알려주는 메시지는 분명하다.

자연과 인간은 별개의 존재가 아니라, 함께 순환하며 조화롭게 살아가는 관계라는 것이다. 이 순환과 조화의 정신은 단지 종교적 신념에 그치는 것이 아니라, 동양인의 삶과 건축, 문화 전체에 스며들었다.

숲은 그런 의미에서 단순한 자연적 공간이 아니다. 그것은 삶과 죽음, 그리고 자연과 인간이 만나는 조화의 공간이자, 순환의 철학을 깨닫게 해주는 거대한 가르침의 장소였다.

»» 정복이 아닌 조화를 선택한 숲의 사람들.

동양에서 숲의 종교가 자연스럽게 발달한 이유는 오랜 기간 한 장소에 정착하여 농경을 해온 민족 특성과, 뚜렷한 사계절 속에서 삶과 죽음이 끊임없이 반복되는 자연 환경 때문이었다. 이런 환경에서 윤회 사상이 자연스럽게 형성되었고, 사람들은 자연을 정복해야 할 대상이 아니라 조화를 이루어야 하는 존재로 인식하게 되었다. 이러한 자연과의 조화는 동양 건축에서 벽을 통한 엄격한 구분이 아닌, 안과 밖의 모호한 경계를 이루는 형태로 나타났다. 숲의 종교는 결국 자연과 인간이 끊임없이 순환하고 연결된다는 철학적 깨달음을 담고 있는 것이다.

어쨌든 동양의 특성을 설명하며 부가적으로 철학적 논의를 설명하든, 불교의 이야기를 예시로 설명하든, 결과적으로 동양의 윤회 사상과 숲의 종교관이 우리에게 건네는 메시지는 한결같다. “모든 것은 돌고 돌아 다시 만난다.” 자연의 사계절처럼 우리의 삶도 흘러가 다시 돌아오고, 오늘 피어난 꽃은 언젠가 다른 모습으로 또 피어난다. 이러한 순환의 관점을 통해 동양 문화권 사람들은 생명을 바라보는 깊은 공경심겸손한 태도를 배워왔다.

사막의 종교 - 선과 악의 명확한 구분

**해당 챕터 결론 스포일러 (토글 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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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애굽기의 사례처럼 유럽인들의 대이동 또한 환경적 요인과 생존의 필연성 때문에 시작되었고, 그 과정에서 강력한 집단 정체성과 극단적 신앙적·사상적 가치가 형성되었다. 이것이 바로 유럽인들의 독특한 역사적, 문화적 특성의 근본을 이루게 된 것이다.

지금의 유럽인들의 기원은 메소포타미아와 중앙아시아에서 시작되었으며, 그들은 환경적 요인과 생존의 필요성에 따라 끊임없는 대규모 이동을 거쳐 현재 유럽 대륙에 정착하게 되었다.

이러한 민족 대이동 과정은 출애굽기의 이야기처럼 극단적인 생존 상황에서 강력한 단결과 명확한 선과 악의 구분을 필연적으로 요구했고, 그 결과 유럽인들 특유의 명확하고 극단적인 가치관과 정체성이 형성된 것이 아닐까?

그렇다면, 서양의 `천국 아니면 지옥’ 과 같은 흑백논리적 세계관 형성은 과연 어디에서 기인했을까?

정답은 아니지만.. 나는 출애굽기를 통해 서양인들이 어째서 흑백논리를 통한 세계관을 구축하게 되었는지 설명하고자한다.. 굳이 출애굽기를 가져온 이유는, 내가 유치원부터 대학교까지 종교와 밀접한 교육기관에서 출애굽기를 접하며 자랐기 때문에… 종교는 없지만? 뭔가 출애굽기의 서사와 상징들이 이러한 이분법적 세계관의 토대가 되었다고 보기에, 출애굽기가 어떻게 서양의 문화와 사고방식을 형성했는지, 서양 문화의 핵심을 이해하는 열쇠로서 살펴 보고자 한다.

» 출애굽기와 유일신 사상의 연관성

출애굽기를 통해 사막의 종교가 왜 숲의 종교와 다른 방향으로, 즉 극단적이고 유일신적 성향을 강하게 띠게 되었는지를 살펴보려 한다면, 우선 두 환경의 차이를 명확히 떠올리는 게 중요하다. 숲의 종교와 사막의 종교를 비교하면, 숲은 보통 생명이 풍부하고 다양성이 넘치는 공간이기에 자연스럽게 다신교적이고 다원적인 세계관이 발전하기 쉬웠을 것이다. 다양한 신들이 각자 역할을 맡아도 환경적 풍요가 그것을 허용하기 때문이다.

»» 믿음도 자연환경에서 기인한다.

하지만 사막이라면 어떨까?

사막은 척박하다. 생명이 드물고 물과 식량이 절대적으로 부족하다. 사람들은 사막을 횡단하면서 하나의 분명한 목표, 즉 ‘생존’만을 추구하게 되었을 것이다. 이슬람이 돼지고기를 먹지 않는 이유는, 돼지가 신성해서라기보단, 돼지가 물을 상당히 많이 요구하는 가축이기 때문이다. 결국, 우리 인류의 종교 또한 자연환경에서 기인한다. 그렇다면, 신앙도 비슷한 양상을 보였겠지? 생존이 절박할수록 믿음의 대상도 더 명확하고 강력해야 했을 것이다. 숲의 종교처럼, 여러 신을 돌아가며 섬기고 여유롭게 다양한 신격을 받아들이는 건 사막의 환경에서는 너무 위험했을 것이다. 분산된 신앙은 곧 분산된 힘이 되고, 분산된 힘은 곧 죽음과 실패를 의미했을 테니까 말이다.

»» 출애굽기와 유일신앙

자, 여기서 출애굽기의 이야기로 들어가 보자.

이스라엘 민족은 한때 애굽(현 이집트), 찬란한 문명의 그늘 아래 머물렀었다. 비록 노예의 신분이었지만, 풍요로운 땅에서 먹고 사는 데에는 큰 어려움이 없었다. 오히려 익숙한 삶, 어쩌면 안락함마저 느꼈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그들은 억압받는 존재였고, 자유를 향한 갈망은 그들의 마음속 깊은 곳에 자리 잡고 있었다.

그들의 간절한 기도에 응답이라도 하듯, 기적적인 힘이 그들을 애굽에서 해방시키게 된다. 나일 강이 핏빛으로 물들고, 끔찍한 전염병이 애굽을 휩쓸며, 하늘에서는 불덩이가 쏟아지는 재앙이 이어지게된다. 파라오는 더 이상 저항할 수 없었고, 이스라엘 민족은 마침내 쇠사슬을 끊고 자유를 찾아 떠나게 된다.

물론, 그들에게 선택지가 아주 없었던 것은 아니다. 광야에서 끊임없이 불평하고, 모세를 원망하며, 심지어는 애굽의 노예 생활을 그리워하는 이들도 있었다. 그러나 눈앞의 현실은 절망적인 사막뿐이었다. 이 과정에서 이스라엘 백성에게는 선택지가 없었다. 믿음을 잃거나 멈추면 곧 죽음이었다. 생존하기 위해서는 공동체의 결속이 절대적으로 필요했고, 그 결속의 중심에는 강력한 신이 있어야 했다.

»» 어쩌면 우리에게도 익숙할 선택과 집중.

그렇다면 왜 하필 ‘유일신’일까?

하나의 절대적 신이 아닌 다수의 신을 섬기는 방식이라면, 공동체의 구심점은 분산될 수밖에 없었을 것이다. 각자가 다른 신을 바라보고, 각자의 신이 다른 방향을 가리킨다면, 공동체는 단결되지 못하고 갈등과 혼란 속에서 생존 자체가 위협받게 된다. 이는 하나의 방향을 통해 힘을 합쳐서 가도 모자랄판에, 누구는 서쪽으로 가자하고, 누구는 동쪽으로 가자며 그 힘으 분산된다면, 불필요한 오버헤드와 인력의 분산에 의해 생존 확률은 더더욱 낮아지게 되겠지… 즉, 사막이라는 환경에서는 철저히 하나의 방향과 하나의 권위, 하나의 리더십이 절대적이어야 했을 것이다. 이런 맥락에서 출애굽기의 하나님은 다른 신들을 모두 무력화하고, 오직 자신만이 참된 신임을 증명하는 10가지 재앙을 통해 스스로 절대적인 유일신으로 드러나게 된다.

모세가 시내산에서 받은 십계명 중 첫 번째가 “너는 나 외에 다른 신들을 섬기지 말라"라는 명령이라는 것은 의미심장하다. 이 명령은 단순한 종교적 권고가 아니라, 사막에서 살아남기 위한 생존의 지침이었다고도 볼 수 있지 않을까? 오직 하나의 신, 오직 하나의 권위 아래에서만 그들은 결속하고 살아남을 수 있었으니 말이다.

그러니까, 결국 사막이라는 환경이 종교를 극단적이고 유일신 중심으로 몰아가는 근본적 배경이 된 셈이다. 출애굽기는 그 과정을 아주 선명하게 드러낸다.

사막의 환경이 만들어낸 이 극단적 유일신 신앙은 단지 믿음의 문제에 그치지 않고, 생존과 결속, 그리고 공동체의 운명을 좌우하는 실질적이고도 생존적인 문제였던 것이다.

결국 숲과 같은 풍요로운 환경에서 나타난 종교들이 다양성과 유연성을 지닌다면, 사막이라는 생존이 걸린 극한 환경에서는 종교조차도 강력하고 배타적이며 극단적인 형태로 발전할 수밖에 없었다. 출애굽기는 이런 현상이 어떻게 역사적으로 전개되는지를 가장 잘 보여주는 이야기가 아닐까?

»» 사막의 종교가 세계를 흑백으로 보는 이유

출애굽기의 이야기를 통해, 사막의 종교가 숲의 종교와 다르게 극단적이고 유일신 중심의 성격을 띠게 된 이유는 사막이라는 척박한 환경에서 생존과 결속을 유지하기 위해 반드시 하나의 절대적 권위와 강력한 공동체적 리더십이 필요했기 때문이다. 이 과정에서 다른 신들을 배제하고 하나의 신만을 철저히 섬기는 배타적이고 극단적인 유일신 사상이 발전하게 되었으며, 이는 출애굽기를 통해 이스라엘 민족의 역사적 경험과 함께 명확히 드러난다.

이처럼 사막의 척박한 환경은 생존을 위해 강력한 공동체적 연대와 절대적인 지도력을 요구했다.

» 서양인, 그들의 기원

지금까지 우리는 출애굽기를 통해 사막 환경이 어떻게 극단적이고 배타적인 유일신 신앙을 형성했는지 이야기했다.

그런데 이제 그 출애굽기의 이야기를 다시 생각해 보면, 사실 이것이 유럽인들의 민족 이동을 이해하는 하나의 좋은 비유도 될 수 있지 않을까?

자, 그러면 질문을 하나 해보고싶다. 유럽인들은 과연 처음부터 유럽 대륙에 정착했던 걸까?

»» 자연을 극복하기 위한 인류의 사투.

자, 그럼 왜 이들은 고향을 떠나서 머나먼 유럽 지역까지 그렇게도 긴 여행을 했을까?

이동은 단순한 선택이라기보다는 생존의 필연성이었다. 인류 역사에서 자주 목격되는 현상이지만, 민족이 대규모 이동을 하게 되는 배경에는 대부분 환경적 요인이 있다. 사막화, 기후변화, 혹은 인구 증가로 인한 자원의 부족과 같은 상황이 발생했을 것이다. 이런 상황은 그들에게 선택지를 거의 주지 않았다. 이동하거나, 죽거나. 그 둘 중 하나였다.

이 점에서 방금 우리가 다뤘던 출애굽기의 이야기가 하나의 흥미로운 비유로 다시 떠오른다.

이스라엘 민족이 애굽이라는 풍요로운 곳을 떠나, 사막을 건너 젖과 꿀이 흐르는 약속의 땅으로 이동해야만 했던 그 긴박한 상황은, 어쩌면 유럽인들의 조상이 메소포타미아에서 현재 유럽 대륙까지 이동했던 과정과 상당히 닮았다. 실제로 민족 대이동이라는 역사적 사건들도 결국 비슷한 맥락을 가진다. 생존의 위협 앞에서 집단은 단합하여 이동할 수밖에 없고, 이 과정에서 명확한 목적지와 강력한 지도자, 그리고 단결을 유지하는 이념이나 신앙이 필요했을 것이다.

»» 서양. 불안, 갈등과 이동의 정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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